페이스북에서 흥미로운 강연 후기가 있어서 블로그에 기록해 둔다. 나처럼 일상적인 업무에 AI의 활용은 이제 필수적인 파트너로 자리잡게 되었는데 한 분야에서 경지에 오른 이(나는 어떤 분야이든 이런 분들은 예술가라고 명명해야한다고 생각한다.)가 바라보는 시각은 어떤지 강연 후기를 보면서 엿볼 수 있었다.
승부결의 세계를 초월한 매 대국마다 하나의 작품을 만드는 화가가 되는 것을 원했으며 알파고 이전 프로기사로서의 매회 승부의 결과에 상관없이 작품을 만드는 것은 상대방 의식의 흐름과 교류하며 복기를 할수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지만 알파고를 만나면서 이제더이상 나의 작품을 만들수 없다는 현실을 직면하고 은퇴를 한 그의 심상을 엿볼 수 있었다.
이세돌이 느꼈을 좌절과 바둑에 대한 회의는 사람과의 관계속에서 문제를 정의하고 해결하는 다양한 분야에 몸을 담고 있는 이들에게 주는 시사점이 분명이 있다고 생각한다. AI의 한계와 무서움은 결국 우리 스스로 끊임없이 고민하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텐데.. 가능할지.. 이세돌이 느낌 회한과 좌절은 머지않아 우리가 느끼게 될지도 모르겠다.
나는 사람과의 관계보다는 모니터를 통한 기계적인 소통을 통해 일을하는 직업군이다. 이쪽 분야는 AI서비스를 좀더 업무에 밀접하게 결합하여 사용하는데 나의 분야에서도 한계를 느끼는 부분이 분명이 있다. 이 부분은 좀더 내가 쌓아왔던 경험과 여기서 표출하는 일종의 신호가 AI의 결과를 미세하게 수정하고 피드백을 하면서 결과를 적용하지만 더 무서운 점은 이러한 AI가 구현하는 한계를 돌파하기가 또 마땅치 않는 점이다.
원문 링크 : https://www.facebook.com/share/p/1EyhkTLtTJ
학교에서 한 이세돌 기사 초청 강연 <인공지능과 창의성의 미래>를 들었다. 이세돌 기사가 정말로 인공지능과 창의성의 미래에 대하여 그렇게 대단한 것을 말할 것 같지는 않았으나, 인공지능을 마지막으로 이긴 인간 기사의 소회 같은 것은 충분히 들을 가치가 있을 것 같았다. 실제로도 강연 내용은 충분히 좋았다. 프로기사가 바둑을 어떻게 대하는지, 인간보다 강력한 인공지능 바둑 프로그램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이긴 사람이 알파고와 대국하며 무엇을 느꼈는지 들을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강연의 내용을 정리하자면 대강 다음과 같다.
- 이세돌은 다섯 살 때 바둑 배우고, 열두 살부터 프로기사가 됨.
- 바둑을 보드게임이나 마인드 스포츠가 아닌, 예술로 배웠음.
- 바둑을 둘이 만드는 하나의 작품이라고 생각해서 자부심을 가지고 바둑을 둠
- 바둑을 보드게임이나 마인드 스포츠라고 생각했으면 바둑에 인생을 걸지 않았음.
- 프로가 되는 순간 아무도 건들지 않음. 그때부터는 혼자서 공부함. 다른 사람이 공부하자고도 안 하고 혼자서 길을 만든다는 느낌으로 공부함.
- 인터넷이 연결된 다음부터 공동연구가 시작됨.
- 중국에서 공동연구가 시작되고, 중국의 영향을 받아서 한국도 공동연구를 시작함.
- 이세돌은 공동연구가 바둑의 본질을 해치는 것이라고 생각하여 이를 바람직하게 바라보지 않았음.
- 처음 알파고와의 대국 제안을 받았을 때 구글에서 이벤트 하는 줄 알고 별 고민 없이 받아들였음. 진다는 생각도 하지도 않았음.
- 알파고와 이세돌의 대국 이전에 이미 알파고는 다른 인간 기사와 대국한 것으로 보임.
- 한국의 중급 프로기사들이 뜬금없이 런던으로 갔음.
- 알파고 이후에는 바둑계에 천지개벽이 일어남.
- 2017년부터 인공지능 프로그램을 깔림.
- 공동연구 대신 인공지능과 대국하고 암기함. 50수까지 (인공지능의 수를) 외우고 그 다음에는 인공지능의 감각을 익힘.
- 그런 식으로 바둑을 배웠다면 이세돌은 바둑을 하지 않았을 것. 그런데 그렇게 안 하면 점수가 안 남.
- 인공지능이 이세돌보다 두 점 더 셈.
- 바둑과 암기는 완전히 떨어져 있음. 정석이라는 틀을 보고 잊어버리라고 함. 틀에 갇히면 안 되기 때문에 참고만 하는 정도임.
- 암기와 동떨어진 입장에서 다시 암기하려니 힘듦.
- 지금 프로바둑은 50수까지는 굉장히 빨리 둠
- 지금 이전의 기보는 바둑 교육에 전혀 쓰이지 않음.
- 기보에 역사적 가치는 있을 수 있지만 내용적 가치는 없음.
- 그러면 기보에는 다른 가치는 없나? (대국하는 기사의) 의도가 들어가 있지 않나?
- 그런데 지금의 인공지능은 의미가 없나? 내용적으로는 (인간의 기보보다) 더 위이지 않나?
- 어떤 프로기사는 (인공지능 바둑 프로그램을 도입할 때는) 인공지능이 자기의 틀을 깨주어서 더 좋다고 했음. 그런데 7년이 지난 현재는 인공지능이라는 틀에 갇힌 것 같다고 함.
- 예술 등은 인공지능이 침투하는 중이라고 하는데, 바둑은 이미 침투했음.
- 이세돌은 굉장히 빠른 나이에 은퇴했음.
- 자부심을 느끼고 바둑을 했고, 다른 사람에게 바둑에 대한 영감을 줄 수 있다고 믿었는데, (알파고와의 대국 이후) 자기 자신에 대해 한심한 느낌이 들었음.
- (알파고와의) 4국에서 둔 수는 완전히 작전을 짜고 들어간 것임. 오직 이기기 위해서, 버그를 일으키기 위해서 한 것임.
- 인간과의 대국에서 그렇게 작전을 짠 경우는 없음. 한 번도 그렇게 바둑을 두지 않았음.
- (알파고와의 대국 이후) 일주일, 한 달이 지나고 나서 이게 맞았나 하는 생각이 듦
- 프로니까 승부가 중요한 것인데, 사실 바둑에서 승부는 사실 중요하지 않음.
- 바둑은 일종의 작품을 만드는 것이기 위한 것임.
■ 질문: 바둑에서 창의성이란 어떤 것인가?
- (알파고와의 대국 이전에는) 창의성이 없는 바둑은 가치가 없다고 생각했음.
- 영감을 주지 않는 바둑은 가치가 없다고 생각함. 지고 이기고는 중요하지 않음.
- (대국할 때) 새로운 것들을 담으려고 함. 의도를 담음.
- 바둑에서 창의성은 90% 이상, 절대적이라고 생각했음.
- 예전이면 창의성이 없는 바둑이 이길 수는 없고, 창의적으로 두어야만 이길 수 있었음.
■ 질문: 바둑에서 승률과 창의성은 어떤 관계인가? 승률은 낮지만 창의적인 것도 가능한가?
- 승률과 창의성은 비례함.
- 이창호의 바둑을 처음 본 일본 기사들이 “이게 뭐지?”라고 함.
- 이창호의 바둑을 두고 창의적이라기보다는 계산적이라고 생각했지만 깊게 생각해 보면 굉장히 창의적임.
- (이창호) 이전에는 20수, 30수만 넘어가도 누가 두는지 알 수 있었으나, 이창호는 그 수 이상을 두어야 이창호인 줄 알 수 있었음.
- 알파고 이전에는 개성, 창의성이 절대적이었음.
- (이창호 이전에는) 형세판단, 끝내기를 그렇게 중요시하지 않았는데, 이창호는 형세판단, 끝내기를 상당히 중요시했음. 처음에는 이를 굉장히 이상하게 보았음.
- 형세판단, 끝내기로 이끌어가는 것은 새로운 무언가를 만든 것이고 그렇게 만드는 게 굉장히 재미있음
- 아마추어는 이창호 바둑을 재미없다고 하지만 프로 입장에서는 굉장히 재미있음. 기력이 올라갈수록 그 가치를 느낄 수 있음.
■ 질문: 자기만의 바둑 스타일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 적이 있는가?
- 자기만의 스타일을 만들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하다 보니 만들어지는 것임.
- 스타일을 만들려고 의도하지는 않음.
■ 질문: 프로에게 승패도 중요하지 않은가?
- 처음 시작할 때부터 승패에 집중하면 안 됨
- 나중에는 수익 생각하게 되고, 수 읽기 능력, 집중력이 더 중요해지는 순간이 오게 되지만, 그런 것은 부차적인 것에 불과함.
■ 질문: 창의적인 바둑을 두게끔 하는 훈련법이 있는가?
- 바둑은 편차가 심함. 운동은 과학적인 훈련을 하지만 바둑은 그런 것이 없음. 어떻게 공부해야 하는지도 모름.
- 프로는 터치가 없고 알아서 하라고 함. 이에 대해 답답해하는 사람도 있지만 이세돌은 좋았다고 함.
■ 질문: 대국할 때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 존중, 배려, 책임이 중요함.
- 상대방을 존중하지 않으면 좋은 작품이 나올 수 없음.
- 프로는 한 수 한 수에 다 책임을 지고 의도를 가져야 함
- 잡생각이 들거나 몸 상태가 안 좋으면 무의미한 수가 나오기도 함.
- 같은 프로라서 말을 하기는 어렵지만, 후배 기사들을 보면 무책임한 수를 두는 경우도 있는 것 같음.
■ 질문: 기사가 한 수 한 수에 책임을 진다는 게 놀랍다.
- 명국을 만드는 것이 목표였는데 은퇴할 때까지 못 만들었음. 혼자 잘 두어서는 안 되고 상대방도 잘 두어야 하는데 한 수 한 수 책임을 지지 않으면 명국이 될 수 없음
- 명국을 만드는 게 목표인 프로기사들이 굉장히 많음.
- 내가 한 수를 망치면 명국을 만들 수 없음
■ 질문: 알파고와 그 이후의 프로그램
- 알파고와 1국 때 사실상 30수에 끝남. 내용적인 의미는 없음
- 1국 끝나고 웃는데 그건 심각성을 몰라서 그런 것임. 실수했다고 생각했음.
- 2국 때 사진은 굉장히 심각함. 최선을 다해서 두었는데 힘 한 번 못 써보고 졌고, 거기서 오는 충격, 절망감이 컸음. ‘이거 안 되는 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음.
- 3국부터 작전을 짰음. 수가 많아질수록 인공지능이 계산을 잘 할 것이니 극초반에 승부를 보자고 생각했으나 실패함.
- 인공지능은 수많은 알파고들끼리 대국하므로 어마어마한 데이터를 가질 것임. 기계는 계산을 하지만 인간은 경험을 통해 감각을 익힘. 인간은 돌이 놓여야 계산을 할 수 있는데 한두 수 둔 것 가지고 계산을 할 수 없음.
- 4국 때는 극초반에 (승부를 보면) 안 되고 돌이 많아지면 또 안 된다고 생각함.
- 50수까지는 바둑이 나쁘더라고 끝나지 않는 정도로 그냥 견딤
- 돌이 더 많아 지면 알파고가 완전해질 것 같아서 100수 전에 승부를 보기로 함.
- 70-80수에서 승부를 보자고 했고, 버그가 일어남
- 정수가 아닌 것 같지만 일단 가자고 한 것도 처음, 초반에 버티자고 생각한 것도 처음
■ 질문: 그런데 거기서 (승부를 본 것을) 인간의 창의성이라고 하지 않나?
- 버그를 일으킨 게 뭐가 대단한가? 그 당시 초기 버전이라 그런 것이었음.
- 중요한 건 타이머였음. 50초인가 1분 안에 두게 되어 있었는데, 이를 만일 2분, 3분으로 늘렸다면 버그가 안 일어났을 가능성이 높음
- 완벽한 작전인 거고 이건 바둑이라고 할 수 없음.
- 이것이 은퇴에 영향을 줌.
■ 질문: 대국에서 상대방에 대한 존중과 배려가 중요하다고 했는데 알파고는 어땠는가?
- (알파고 관계자가 말하기를) 최선의 수를 찾는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었는데 자본이 너무 들어서 승률을 높은 수를 찾도록 했다고 함. 그래서 딱 봐도 둔 게 이상함
- 그 당시는 승률이 높은 수라는 개념도 생소해서 기괴하다고 해야 하나?
- 중국에서 바둑 프로그램 나온다고 해서 기대했는데, 알파고를 거의 비슷하게 베껴서 승률 높은 수를 찾는 프로그램이었음.
■ 질문: 알파고와는 명국은 불가능한가?
- 불가능함. 최선의 수를 찾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 바둑에서 제일 중요한 것이 복기임.
- 너는 왜 이렇게 두었느냐를 해야 바둑이 끝났다고 생각하는데, 인공지능은 대화가 불가능하므로 명국이라는 개념이 성립할 수 없음.
■ 질문: 인간 기사와 어떤 이야기를 하는가?
- 복기하면서 가장 창의적인 수가 나옴. 승패를 완전히 떠났기 때문임. 거기서 많은 영감을 얻음. 그래서 복기가 바둑의 핵심이고 굉장히 재미있음.
- (이세돌이) 이기면 진 사람 잡아놓고 복기하기 그런데, (이세돌이) 지면 (복기할) 명분이 있으니 한두 시간 정도 복기함.
- 중계를 안 해서 그렇지 대국이 끝나면 복기함.
- (알파고와의 대국이 끝난 후에는) 알파고와 복기한 것이 아니라 인간 프로기사를 불러서 복기했는데 절망적이었음.
- 이창호는 이거 이길 수 없으니 나머지 판은 편하게 두라고 함.
- 이창호도 4국처럼 두는 방법을 알았을 것임. 알파고의 약점을 파고 들 수 있는 방법을 알았을 건데 거기에 담겨 있는 뜻이 있지 않을까 싶음.
■ 질문: 인터넷 바둑에서도 복기하지 않았을 텐데 지금도 그런 식으로 하는 거 아닌가?
- 2000년대부터 그랬는데 이세돌은 그렇게 좋아하지 않았음.
- 상대방이 (앞에) 앉아있지 않아서 책임질 수 없는 수를 두게 되는 경향이 있어서 좋아하지 않음.
- 후배 기사들은 인터넷 바둑을 많이 두었음.
- 선배 기사들은 인터넷 바둑을 좋아하지 않았음. (바둑 두는) 맛이 없다고 함.
- 후배 기사들은 이러면서 연습하는 거 아니냐고 함.
■ 질문: 수학이나 이론 물리학 하는 사람도 사람 만나는 것을 좋아하고 칠판 하나 놓고 대화하면서 영감을 얻는다고 하는데 바둑의 경우는 이와 다른가?
- 모여서 생각을 공유하면 뭐가 나오나?
- 기사들끼리도 그런 자리가 만들기도 하지만 탑 랭커들은 그 자리에 없음. 필요성을 못 느꼈을 수 있고 그것을 좋게 보지 않음.
- 미술과 비슷하다고 보면 좋을 것 같음. 이렇게 그려라 어쩌라 이러면 싫어할 것임.
■ 질문: 알파고 이후에 바둑이 어떻게 달라졌는가?
- 기사들이 50수까지는 인공지능 보고 따라함.
- 예술은 정답이 없어야 예술인데 이건 그냥 보드게임이 맞음.
내가 바둑에 대해 아는 바가 거의 없어서 그런지 이세돌의 한 마디 한 마디가 다 놀라웠다. 대국자가 누구인지 알려주지 않아도 상대방이 누구인지 비교적 정확히 알 수 있다는 것도 그렇고, 바둑은 암기가 아니라는 것도 그렇다. 승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든가, 목표는 명국이라든가 하는 이야기를 들으니, 동네 아저씨들이 말할 법한 바둑 격언이 무슨 의미인가 싶었다. 내가 바둑을 못 두니 나로서는 이해하기 어렵지만, 프로기사는 바둑을 단순한 게임 이상의 어떤 것으로 본다는 것도 신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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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신기한 건 신기한 거고, 이세돌의 강연과 질의응답을 들으면서 몇 가지 의문이 떠올랐다. 이세돌은 알파고 이전의 바둑과 이후의 바둑이 달라졌다고 하고, 바둑을 모르는 내가 얼핏 듣기에도 무언가가 많이 달라진 것 같아 보인다. 그런데 무엇이 달라졌는가? 왜 알파고 이전의 바둑은 바둑이고, 왜 알파고 이후의 바둑은 보드게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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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이세돌은 이세돌에게 처참하게 진 사람들이 겪었을 경험을 알파고를 통해 뒤늦게 겪은 것일지도 모른다. 인공지능이 이세돌보다 두 점 세다고 한다. 이세돌보다 두 점 약한 기사들이 이세돌과 대국했다면 어떻게 느꼈을까? 이세돌의 기풍과 의도와 개성을 느낄 수 있었을까, 아니면 자기와 기력이 비슷한 동료들과 대국할 때와는 전혀 다른 어떤 존재와의 파악하기 힘든 대국으로 느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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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간 SF적인 상황을 가정해 보자. 지금 예측하는 것보다 훨씬 빨리 기술이 발전해서 가까운 미래에 강화 인간이 나왔다고 해보자. 팔다리는 물론이고 두뇌까지도 강화할 수 있어서 최정상급 프로기사의 경우 강화 인간이 되기로 마음만 먹으면 알파고 초기 버전까지는 충분히 될 수 있다. 가까운 미래라 이세돌은 노화도 얼마 안 겪었고 기력도 변함없다. 강화 인간이 되기를 거부한 이세돌은 예전 일을 떠올리며 강화 인간과의 대국을 한다. 알파고와의 대국에서와 달리 이번에는 상대방과 복기할 수도 있고 어떤 수를 어떤 의도로 두었는지도 들을 수 있다. 그렇게 몇 판 두고 복기를 한 다음 다시 두었다고 하자. 이세돌은 강화 인간의 수에서 의도를 파악할 수 있을까? 파악할 수 있다면 알파고와의 대국이 기괴했던 것은 알파고에게 의도가 없기 때문일 것이고, 파악할 수 없다면 알파고외의 대국이 기괴했던 것은 바둑 능력이 기존 인간을 훨씬 뛰어넘었기 때문이고 그 이상의 다른 요소 때문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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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상황을 약간 변형한다면, 튜링 테스트와 비슷하게 이세돌 테스트도 구성해볼 수 있을 것이다. 튜링 테스트에서 상대방이 인간인지 인공지능인지 모르게 하고 온라인 채팅으로 상대방과 대화했던 것처럼, 이세돌 테스트에서는 상대방이 인공지능인지 강화 인간인지 모르게 하고 온라인 바둑으로 상대방과 대국하게 한다. 이 때 이세돌은 의도가 있는 강화 인간과 의도가 없는 인공지능을 구별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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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기술의 발전을 통해 바둑을 단순한 보드게임이 아니라 바둑이게 하는 무언가라고 생각했던 것이 사실은 아무것도 아니었음을 알게 된 것은 아닐까? 전쟁 기술의 발전을 통해 귀족들끼리 하던 전쟁에서 전쟁의 본질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사실은 아무것도 아니었음을 알게 된 것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