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일어나자 마자 아내가 예약해 둔 호텔 옥상 루프탑에 위치한 자쿠지로 출발. 아직은 꽤 서늘한 초봄의 아침 공기를 마시며 마음껏 거품욕조에서 망중한을 즐길수 있었다. 우리 가족의 여행 스타일은 욕조에서 풍덩거리기 침대에서 방방 뛰기가 숙소에서 충족이 되어야 하는데 먹거리와 즐길거리보다 우선순위가 높다.
날씨가 좋지 않았지만 다행히 우산을 가져가야 할 만큼 비가 내릴 것 같지는 않았다. 숙소에서 체크아웃을 한 후 명진전복식당에서 늦은 아침 식사를 하며 금요일 일정을 시작한다. 첫 번째 메인 코스인 다랑쉬 오름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이 식당을 선택했는데 워낙 유명하고 평이 좋은 곳이라 실패할 확률은 낮다. 게다가 우리 가족은 모두 전복죽을 즐겨 먹기 때문에 메뉴에 대한 고민도 없었다. 전복죽을 집에서 직접 만들어 먹고 싶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재료비가 만만치 않아서 이 레시피는 좀 더 연구가 필요하다는 것을 조용히 인정하면서 처음으로 제주도 오름의 경험을 위해 출발한다.
유럽여행을 하면서 지식인 가이드(전문 용어로 도슨트 투어라고 한다.) 스타일이 우리 가족에게는 정말 딱 맞는다는 것을 알게되었는데 이번에 제안한 백록담 등반을 대차에 모녀에게 대차게 까이고 차선책으로 제주도 오름 도슨트 투어를 몇군데 알아보고 예약을 진행했다. 박수~~. 아내와 하영이도 모두 대만족. 유료인 오름 투어 한곳과 무료이지만 사전예약이 필수인 세계자연유산으로 선정한 거문오름 두개 프로그램을 금요일, 토요일의 주요 일정으로 결정했다. 오늘은 첫번째 다랑쉬 오름을 만나는 날이다.
도슨트님과 함께 높지 않은 (하지만 올라가는 길은 꽤 경사가 급한) 다랑쉬 오름을 올랐다. 어린시절 기생화산이라는 용어로 알려진 오름은 지질학적인 연구를 통해 독립적인 화산활동의 결과이며 제주도 자연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독특한 자연지형이다. 오름 분화구내부에는 그 옛날 밭농사의 흔적이 밭의 영역을 구분하는 화산석으로 남아 있는 것을 아직까지 볼수 있다. 어려웠던 시절 고단함과 치열한 생존투쟁의 시간을 까마득한 경사의 분화구 아래 흔적을 보며 상상하게 된다.
맑은 날씨가 아니어서 먼곳의 전망까지 선명하게 볼수는 없었지만 제주 동부일대와 주면의 다양한 오름, 그리고 성상일출봉까지 만들어내는 경치가 매우 아름다웠다. 계절에 따라 다른 풍경과 색깔이 방문객의 맞이한다는 도슨트님의 해설은 과정이 아닐것 같다. 오름 마다 계획적으로 조림한 흔적들이 많은데 박정희시대 육지의 여타 다른 산들처럼 벌거숭이였던 제주도의 오름에 관주도로 나무를 심고 오늘날의 오름 풍경을 만들게 되었다고 한다. 계획조림의 명과 암은 거문오름의 해설사를 통해 적나라하게 이야기를 들을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흔히 나스카 지상화처럼 인공적으로 만든 기하학적 무늬가 인상적인 풍경이 있는데 2000년대 초반 관광객들을 위한 오천리조트 개발지의 흔적이라고 한다. 지금은 모두 개발계획이 취소되고 흑역사로 남았는데 천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저 멋진 풍경이 관광단지 건물로 모조리 가려질테니. 그런데 오히려 저런 개발흔적이 또 나름의 자연경관을 차지하는 하나의 퍼즐같다는 느낌이 든다.
도슨트 투어를 하면서 예전 유럽여행때도 그랬지만 우리가족은 항상 제일 앞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서 해설사의 설명을 듣고 리액션을 적극적으로 한다. 여행을 마친 후 후기를 올렸는데 해설사분도 역시 가장 기억에 남는 활발한 리액션과 적극적인 가족이어서 즐거웠다는 답글을 달아주셨다.
이제 서귀포의 1박에 이어서 제주시 도심에 신라 스테이 호텔로 가는 일정인데 아내가 한곳 더 들러보자고 얘기한 휴애리자연생활공원을 들렀다. 이곳은 한라산 배경으로 유채꽃 풍경이 매우 유명한 곳인데 우리가족이 방문한 시점부터 날씨도 급격히 안좋아지고 무엇보다 close time을 잘 체크하지 않아서 도착했을때는 이미 입장가능시간을 넘어선 상황이었다. 하영이는 계획된 일정에서의 변화를 좋아하지 않는데 무엇보다 오름 이후의 피곤함과 날씨, 그리고 또 장거리로 제주도를 종단해서 제주시까지 가야하는 일정을 속상해했다. 아내는 열심히 달래고 나도 부지런히 늦지 않게 숙소로 가야한다.
성판악을 지나 제주시에 도착후 이제 저녁을 먹을 시간. 원래 가기로 한 해장국집 또한 close time을 지난 상태. 오늘 오후 일정은 계속 실패의 연속인데.. 그래도 식사는 해야하니까 바로 옆 일식집에 들어갔다. 오호라. 초밥의 생선회가 아주 듬직하구나. 세가족 모두 아랫배를 두드리며 배불리 먹었다고 생각했는데 후에 이야기를 들어보니 아내는 많이 먹지 못함. 주문할때 음식양을 내가 간과했구나. 하영이는 과식, 아내는 많이 못먹고.. 아내의 섭섭함을 전해들으며 오늘 오후의 일정은 좀 많이 꼬였어. 하지만 이또한 피해갈수 없는 여행의 한자락이다. 하지만 인생의 하강곡선과 달리 여행은 짧은 시간이 압축되어 있기 때문에 얼른 털어버리고 내일을 준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