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는 왜 아직 기업의 생산성을 보장하지 못하는가?
“주식의 가격은 미래의 확정된 수익이 아니라 주식시장에 참여한 사람들이 상상할수 있는 (기대할 수 있는) 값(미래가치)를 얼마나 초과하는지에 달려 있다.”
합창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같이 동행한 지인과의 대화속에서 나눈 이야기였다. 삼성전자가 그렇게 멋진 전세계 최고의 수익을 공식적으로 발표했으나 왜 주가는 거꾸로 가는가에 대한 나름의 결론이었는데 오늘 북마크 해둔 글이 떠올랐다.
조직자본이라는 생소한 용어였는데, 내가 처음 직장생활을 시작했던 DJ정부에서 정보화고속도로로 다음 세대의 먹거리를 만들어 낸 시절보다 앞선 미국의 IT투자가 폭발적으로 일어났던 시절(30년전)에 경제학자가 내놓은 통찰이다. 지금 JM정부에서 명운을 걸고 진행하는 AI시대와 묘하게 겹치는 분석이라 매우 신기하면서도 지금의 시대를 경제/경영의 관점으로 볼수 있는 좋은 아티클이라 생각하고 다시 살펴보고 있다.
40대 생을 달리한 우리나라 경제학자 양신규의 연구를 인용하고 있는데 특히 하드웨어의 투자가 실제 회사의 생산성 향상으로 이어지려면 업무 방식의 재설계와 조직 문화의 변화라는 무형의 자산이 반드시 결합되어야 함을 논문으로 증명하고 있다. 과거 컴퓨터 시대에 기업 가치가 장부상 자산보다 높게 평가받았던 이유는 시장이 이미 이러한 조직적 혁신을 미래 가치로 반영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현재의 AI시대 진정한 승자는 최첨단 모델을 보유한 기업이 아니라, 기술에 맞춰 의사결정 구조와 인적 역량을 가장 빠르게 최적화한 조직이 될 것이라는 것이 저자의 결론이며 나역시 동의하고 있다. 기술은 자본으로 즉시 획득할 수 있지만, 이를 성과로 바꿀 보완적 자산을 구축하는 데는 수만은 인내와 시간이 필요하다. 결국 중심은 인적 자산, 사람이라는 것이 변함없는 결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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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친구가 신문에 쓴 칼럼을 읽었다. 앨런 그린스펀이 연준 의장이던 시절 IT 혁명을 어떻게 바라봤는지에 관한 글이었다. 1990년대 후반, 미국 기업들은 앞다퉈 컴퓨터를 사고 네트워크를 깔았다. 그런데도 생산성 통계는 좀처럼 움직이지 않았고, 경제학자들은 둘로 갈렸다. 한쪽에서는 컴퓨터가 과대평가됐다고 했다. 노스웨스턴대의 로버트 고든은 IT 혁명이 전기나 내연기관만큼 경제를 바꾸지는 못한다고 본 대표적 회의론자였다. 그린스펀은 반대편 연구에 주목했다. MIT의 에릭 브린욜프슨, 그리고 그의 제자 양신규(Shinkyu Yang)였다.
브린욜프슨은 익숙한 이름이었다. 양신규는 아니었다. 호기심에 논문을 찾아 읽기 시작했고, 몇 편을 넘기고 나니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이 사람은 컴퓨터를 연구한 경제학자가 아니었다. 기술혁명이 어떻게 생산성으로 이어지는지를 연구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의 논문은 30년이 지난 지금, AI를 읽는 데도 놀라울 만큼 현대적으로 다가왔다.
1990년대는 지금과 놀랍도록 닮아 있다. 기업들은 경쟁하듯 컴퓨터를 샀다. ERP를 깔고 서버를 세우고 전산망을 연결했다. 투자는 폭발적으로 늘었는데 생산성은 기대만큼 오르지 않았다. 그 시절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로버트 솔로가 남긴 말이 유명하다. “컴퓨터 시대는 어디서나 보이는데 생산성 통계에서만 보이지 않는다.” 이른바 생산성 역설이다. 훗날 회의론을 대표한 고든이 바로 솔로의 제자였다는 점은, 이 논쟁이 얼마나 뿌리 깊은지를 보여준다. 당시 많은 사람이 컴퓨터가 기대만큼 경제를 바꾸지 못한다고 결론지었다.
양신규는 같은 현상을 다른 각도에서 봤다. “왜 생산성이 안 오르지”가 아니라 “우리는 지금 무엇을 측정하고 있는가”를 물었다.
그는 브린욜프슨과 함께 미국 상장기업 수백 곳의 데이터를 뜯어봤다. 결과는 기묘했다. 컴퓨터에 많이 투자한 기업일수록 주식시장은 훨씬 높은 가치를 매기고 있었다. 컴퓨터 자산이 1달러 늘 때 기업가치는 평균 10달러 안팎 늘어나는 것으로 나타났다. 컴퓨터 한 대가 열 배의 가치를 만들 리 없다. 그렇다면 나머지 9달러는 무엇인가.
더 흥미로운 것은 회계와 주식시장이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회계는 컴퓨터만 자산으로 기록했다. 교육비도, 조직 개편도, 데이터 정비도 모두 비용으로 처리했다. 시장은 달랐다. 투자자들은 컴퓨터를 본 것이 아니라, 그 컴퓨터를 계기로 만들어질 조직의 변화를 먼저 평가하고 있었다. 회계는 과거를 기록했고, 시장은 미래를 가격에 반영했다. 양신규가 발견한 것은 컴퓨터가 아니라 장부에 적히지 않는 자산이었다.
기업은 컴퓨터만 산 게 아니었다. 컴퓨터를 쓰려고 조직 전체를 다시 만드는 투자를 함께 하고 있었다. ERP를 들이면 직원을 교육하고, 업무 절차를 처음부터 다시 설계하고, 부서 간 정보 흐름과 데이터 체계를 손보고, 권한과 책임을 다시 나눠야 한다. 이 모든 것은 장부에 비용으로 찍히지만, 기업의 미래를 가른 것은 바로 그 비용이었다. 양신규는 그것을 무형자산, 더 정확히는 조직자본(organizational capital)이라 불렀다.
논문을 읽으며 흥미로웠던 것은 조직자본이라는 말 자체가 아니었다. 그가 말한 조직자본은 공장도 아니고 특허도 아니다. 사람들이 함께 일하는 방식이다. 누가 의사결정을 하는지, 정보가 어떻게 흐르는지, 실패를 어떻게 공유하는지, 지식이 어떻게 축적되는지. 이런 것들은 회계장부에 숫자로 남지 않는다. 하지만 기업의 생산성은 대부분 여기에서 결정된다. 논문을 덮는데 문득 익숙한 생각 하나가 떠올랐다. AI는 비트의 세계에 살지만, 가치는 언제나 원자의 세계에서 결정된다. 조직자본은 그 원자의 또 다른 이름이었다.
지난 2년, 기업들은 다시 거대한 기술 투자를 시작했다. GPU를 사고 거대언어모델을 들이고 사내 AI를 세우고 에이전트를 붙인다. 그런데 생산성이 폭발했다는 이야기는 아직 드물다. 오히려 사람들은 다시 묻는다. “AI도 생각보다 별것 아닌 것 아닌가.” 30년 전과 똑같은 질문이다.
양신규라면 이렇게 답했을 것이다. AI가 생산성을 못 만드는 게 아니라, 우리가 아직 생산성을 만드는 진짜 투자를 끝내지 못한 것이라고. GPT를 계약하는 건 시작일 뿐이다. 진짜 투자는 그다음이다. AI에 맞게 업무를 다시 설계하고, 회의와 보고 체계를 줄이고, 평가 기준을 새로 짜고, 사람과 AI가 함께 일하는 법을 익히는 것. 이것이 AI 시대의 조직자본이다. 그리고 지금도 대부분의 기업은 이 투자를 장부에 비용으로 적는다. 30년 전 컴퓨터 시대와 똑같다.
몇 달째 머릿속을 맴돌던 문장이 다시 또렷해졌다. AI는 병목을 없애지 않는다. 병목을 옮긴다. 처음 병목은 GPU였고, 다음은 HBM이었다. 이어 첨단 패키징, 전력, 냉각, 광통신으로 옮겨갔다. 산업의 지도는 그렇게 그려진다. 그런데 기업 안으로 들어오면 병목은 한 번 더 이동한다. 이번엔 조직이다. AI는 보고서를 몇 초 만에 쓰지만, 어떤 보고서가 필요한지는 여전히 사람이 판단한다. AI는 수천 개의 데이터를 분석하지만, 그중 무엇으로 결정을 내릴지는 조직이 정한다. 기술은 준비됐는데 조직이 그대로면 생산성은 거기서 멈춘다. 병목은 기계에서 사람으로, 사람에서 조직으로 옮겨간다.
그래서 AI 시대의 경쟁력은 모델이 아니라 조직에서 갈릴 것이다. 같은 GPT를 써도 어떤 회사는 생산성이 두 배가 되고, 어떤 회사는 아무 변화가 없다. 차이는 모델이 아니라 조직이다. 양신규는 30년 전 이것을 보완성(complementarity)이라 불렀다. 컴퓨터는 혼자서는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 좋은 조직, 새로운 업무 방식, 교육, 데이터, 권한 재설계가 함께 갖춰질 때 비로소 생산성이 나타난다. 기술은 혼자 혁신하지 않는다. 조직과 함께 혁신한다.
돌아보면 모든 기술혁명이 그랬다. 전기가 발명됐다고 공장이 곧바로 빨라지진 않았다. 증기기관에 맞춰 지은 공장을 전기에 맞게 다시 설계하는 데 수십 년이 걸렸다. 컴퓨터도 마찬가지였다. 기계를 사는 데는 몇 달이면 됐지만, 그 기계에 맞는 조직을 만드는 데는 10년이 걸렸다. AI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모델이 얼마나 똑똑해졌는지에 매일 놀라지만, 생산성을 가르는 것은 모델이 아니라 그 모델을 중심으로 회사를 다시 설계하는 능력이다.
친구의 칼럼을 펼칠 때만 해도 1990년대 경제학 이야기를 읽는 줄 알았다. 양신규의 논문을 덮고 나니 오히려 앞이 보였다. 그는 컴퓨터가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자산을, 기계가 아니라 조직을 연구한 사람이었다. 뒤늦게 알았지만, 그는 2005년 일찍 세상을 떠났다. 자신의 연구가 옳았음을 증명해 줄 시대를 보지 못한 채였다. 그러나 질문은 학자보다 오래 산다. AI 혁명의 승자는 가장 뛰어난 모델을 가진 기업이 아니라, AI를 중심으로 가장 먼저 스스로를 바꾼 조직일 것이다. 기술은 돈으로 살 수 있다. 조직은 시간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래서 기술혁명은 생각보다 오래 걸린다. 생산성은 언제나 마지막에 따라온다. 30년 전 컴퓨터가 그랬고, 오늘 AI도 그렇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