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피아노페스티벌-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후기

클래식은 왜 대중화되지 못할까?

얼마전 구자범 선생님과의 자리에서 예전부터 궁금했던 질문하나를 드렸다.

왜 현대에서는 “클래식”이라는 장르가 대중화 되지 못하는 건가요?

한참을 곰곰히 생각하시던 선생님은 한두시간으로 담을수 있는 주제가 아니다라고 하셨다. 결국 직접 답을 듣지는 못했지만, 그날 선생님과 참석자들의 대화속에서 “이해할수 있는 이들에게 연주하는 것이 지금의 클래식”이 아닐까 라는 내러티브를 내 나름대로 만들었던 기억이 떠오른다.

가장 아름다웠던 낭만주의, 곧 베토벤의 시대는 귀족의 후원이 아니라 일반 대중들에게 표를 파는 공개 연주회로 넘어가던 시기였다. 이 시절은 오히려 귀족음악이 아닌 대중을 향해 문을 열어 가던 음악이었다. 하지만 현대음악을 거쳐 지금의 클래식은 이해하고 공감할 준비가 된 사람들에게 좀더 특별하게 의미가 있는 경험을 제공하는 특수한 영역이 되었다.

특히 내가 주목한 지점은 클래식이라는 형태가 지극히 비효율적인 고비용을 필요하는 음악이다라는 점이다. 평생을 갈고 닦은 전문 연주자들을 모으고, 지휘자가 이끌고 유지하면서 최고의 영역에서 날을 세워 온 솔리스트가 함께 무대에 선다. 단순히 덧셈만 하더라도 ROI가 나올수 없는 대표적인 예술 형태이다. 대중음악이나 영화 같은 문화예술 영역과 비교해 보면 더욱 도드라지는 영역이다.

경제학에서는 이것을 ‘보몰의 비용병(Baumol’s cost disease)’이라고 부는다. 오케스트라 연주는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생산성을 높일 수 없다. 200년 전에도 지금의 베토벤 협주곡을 연주하려면 같은 수의 연주자가 같은 시간을 써야 한다. 비용은 계속 오르고, 결국 자본주의가 극대화된 현대사회에서는 결국 공공의 (세금의) 지원이 필수적이다. 그 옛날 귀족들의 후원이 이제는 세금으로 변신한 셈이다.

이런 특별한 음악을 매우 저렴한 가격으로 예매하고 즐길 수 있는 것은 결국 경제력과 공공의 자원덕분이다. 여기에 꾸준히 티겟을 구매할수 있는 관객의 참여와 소비력도 뒷받침되어야 유지할수 있는 문화 산업이다. 이날 협연한 경기필하모닉 오케스트라도 경기도 산하의 오케스트라이다.

2026 코리아 피아노 페스티벌, 베토벤 프리뷰

2026 대한민국 피아노 페스티벌, 베토벤 프리뷰

지인의 소개로 티켓을 구해 2026 KOREA PIANO FESTIVAL의 10월 4일 일요일 공연을 보고 왔다.
“기획공연-2026 대한민국 피아노페스티벌 –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전곡I(제 1,2,4번)”

  • 피아노 협주곡 2번(내림나장조, Op.19) : 유성호
  • 피아노 협주곡 1번(다장조, Op.15) : 김규연
  • 피아노 협주곡 4번(사장조, Op.58) : 김세현

2번이 1번보다 먼저 연주된 것도 흥미롭다. 실제로는 2번이 1번보다 먼저 작곡되었고, 번호는 출판 순서를 따라 붙었다. 결과적으로 작곡된 순서대로 들은 셈이다.

프로그램북을 읽자

클래식 공연을 많이 접해 보지 않은 나로서는, 티켓을 확인한 뒤 제일 먼저 하는 일이 프로그램북을 사는 것이다. 오늘 연주하는 오케스트라와 솔리스트 소개, 그리고 무엇보다 오늘 어떤 곡을 연주하는지, 곡의 구성은 어떤지를 빠짐없이 읽어 내려간다. 활자중독자답게 텍스트를 읽는 일이 나에게는 직관적이고 편안하다는 게 다행이다.

사전 지식 없이 최고 수준의 연주를 듣는 것도 물론 의미가 있다. 하지만 일반 노래와 달리, 한 곡이 30분 안팎에 3악장으로 이어지는 음악을 처음부터 끝까지 집중해서 듣는 일은 관객에게도 말 그대로 ‘클래식한’ 취미이자 큰 에너지가 드는 일이다. 제목만 보고 곡을 떠올릴 수 있는 수준이 아니라면, 길을 잃지 않기 위해 미리 꼼꼼히 읽고 조금은 각오를 하고 가야 하는 공연 예술이다.이번 페스티벌의 부제는 ‘베토벤 프리뷰’다. 2027년 베토벤 서거 200주년을 한 해 앞두고, 피아노 협주곡 전곡부터 소나타와 실내악까지 베토벤의 여러 음악을 다양한 연주자와 프로그램으로 소개한다.

세 개의 협주곡

역시 김세현의 4번이 관객 호응이 가장 뜨거웠고, 피아니스트의 기교를 가장 화려하게 드러낼 수 있는 곡이었다. 하지만 연주자와 별개로 곡 자체는 나는 1번이 가장 좋았다.

1번 — 피아노와 대결하는 오케스트라

세 곡 모두 처음 듣는 곡이었는데, 특히 1번에서는 오케스트라가 단순한 배경이 아니었다. 피아니스트와 대결하듯 끊임없이 긴장감을 만들어 낸다.

2악장도 인상적이었다. 클라리넷이 피아노와 주고받는 선율, 현악기의 피치카토, 그 위에 또렷하게 얹히는 피아노의 섬세한 장식음까지. 아름다운 곡이다.

4번 — 피아노 혼자 문을 여는 협주곡

4번은 독특했다. 프로그램북을 보고 알았지만, 이 곡은 오케스트라가 아니라 피아노 독주로 시작한다. 보통의 협주곡이라면 오케스트라가 한참 주제를 들려준 뒤에야 피아노가 등장하는데, 4번은 피아노가 조용히 첫 화음을 짚으며 문을 연다. 오오, 정말 인상적인 부분이었다.

이 곡에는 또 하나의 사연이 있다. 4번은 1808년 12월 빈에서 베토벤 자신의 독주로 공개 초연되었는데, 이 공연이 베토벤이 협주곡 독주자로 직접 무대에 선 마지막 공연이었다. 피아니스트로서의 마지막 공개 연주는 몇 년 뒤인 1814년 「대공 트리오」였다. 다음 작품인 5번 「황제」는 다른 피아니스트가 초연했다.

카덴차는 즉흥이 아닌가요?

카덴차는 협주곡에서 오케스트라가 멈추고 독주자가 홀로 기교를 펼치는 구간이다. 원래는 연주자가 그 자리에서 즉흥으로 연주하는 부분이었다.

그런데 베토벤은 1809년 무렵, 협주곡 1번부터 4번까지의 카덴차를 직접 써서 남겼다. 제자이자 후원자였던 루돌프 대공이 연주할 수 있도록 하려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다고 한다. 연주자의 즉흥에 맡기기보다 작곡가가 음악 전체를 통제하려는 시대의 흐름도 있었다. 그리고 다음 작품인 5번 「황제」에서는 아예 카덴차를 곡 안에 써넣고, 즉흥 카덴차를 하지 말라고 지시했다.

여기서 궁금해졌다. 그럼 즉흥연주가 아닌데, 이걸 카덴차라고 부를 수 있나?

알고 보니 작곡가들이 카덴차를 미리 써 두기 시작하면서, 카덴차는 ‘즉흥 연주’라는 뜻보다 ‘독주자가 홀로 기교를 펼치는 구간’이라는 형식의 이름이 되었다고 한다. 4번 1악장에도 베토벤이 남긴 카덴차가 두 종류 있고, 연주자는 브람스나 클라라 슈만 같은 다른 음악가의 카덴차를 고를 수도 있다. 같은 곡이라도 누구의 카덴차를 고르느냐가 연주자의 개성이 되는 셈이다.

고전주의에서 낭만주의로 넘어가는 다리 위에 서 있던 베토벤답게, 즉흥의 시대에서 작곡가가 모든 음을 책임지는 시대로 넘어가는 장면이 카덴차 하나에도 담겨 있다.

공연장에서만 보고 들리는 것

교향곡도 좋지만,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은 어느 한 곡도 버리기 어렵다. 오케스트라와 피아노 독주가 아름답게 또는 과격하게 주고받는 현악/관악/피아노의 대결과 조화는 공연장에서 꼭 들어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음반으로는 들을 수 없는 피아노의 미세한 강약, 이 강약을 온몸으로 표현하는 피아니스트의 아우라, 실과 바늘처럼 끊임없이 이어지는 오케스트라와의 조화는 그 공간에 있는 관객들만 보고 듣고 느낄수 있다.

피아노 협주곡 공연에서 왜 무대를 바라보고 왼쪽 좌석부터 매진되는지도 이제야 이해했다. 피아노 건반이 무대 왼쪽에 놓여서, 왼쪽에 앉아야 피아니스트의 손이 보이기 때문이다. 다만 피아노 뚜껑은 객석 오른쪽을 향해 열리기 때문에, 소리만 놓고 보면 오른쪽이나 가운데가 낫다는 의견도 많다. 손을 볼지, 소리를 들을지. 다음 공연에서는 반대쪽에 앉아 봐야겠다.

예전에는 의식하지 못했던 교향악단의 배치도 흥미롭다. 바이올린은 음이 관객석방향으로 튀어나오지만 반대편에 앉아 있는 비올라는 반대방향으로 뻗어간다. 또 영상을 보면 아예 왼쪽에 바이올린과 비올라를 동일하게 배치하는 형태도 보인다. 이것은 아마도 공연장의 형태/특성과 무엇보다 지휘자의 개성이 아닐까라고 추측해본다.

피아노는 손만으로 연주하지 않는다. 두 발이 밟는 미묘한 페달도 빼놓을 수 없다. 나는 이번공연에서 연주자의 손을 볼수는 없었지만 (무대기준 오른쪽에 앉아서 감상) 피아니스트의 페달을 자세히 볼수 있었다. 베토벤은 4번 2악장에 왼쪽 페달(una corda, 약음 페달)을 쓰라고 직접 적어 두기도 한다. 손가락만큼이나 연주자마다 양발을 통한 페달을 연주하는 스타일이 모두 다르다. 다음에 공연장에 간다면 페달을 밟는 발의 모양도 피아노 연주의 중요한 부분이니 다시 한번 살펴볼 것이다.

아직은 클래식이라는 음악의 시작점에서 모색하고 듣는 단계이지만 공연장에서의 가느다란 피아노음의 떨림이 깊은 여운을 기억에 새긴다. 많이 듣고 많이 보면 좀더 넓은 세계가 열릴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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