룰루 밀러의 아버지
데이비드 스타 조던
룰루 밀러
그리고 그레이스
과학책이라기보다는 논픽션 연애소설을 읽은 느낌이다. 특히나 마지막 장 에필로그는 사랑스러웠다. 역시 해피엔드의 연애소설은 좋은 것이다. 과학저널리스트가 쓴 논픽션 작품인데 과학자가 직접 쓴 “랩걸”과도 비교가 되는 작품이다. 둘 작품 모두 근래 가장 빛나는 과학 에세이집이다. 두분 모두 여성이라는 공통점. 역시 여우책방의 빅피쳐.
이 책에서는 다윈의 진화론, 그의 파생인 우생학, 그리고 1980년대 이후 과학적 업적이라 할 수 있는 분류학의 최신 이론(Naming Nature – 캐럴 계숙 윤)이 기본 뼈대를 이루고 있다.
우선 이 책에 흐르는 과학적 자세(태도)는 내가 석사학위 논문을 직접 작성하며 논문 준비 내내 교수님에게 귀가 따갑도록 들었던 질문과 일치한다. “너의 주장? 그 주장을 표현할 수 있도록 세상에 내놓을 수 있도록 검증된 모델 위에 너의 주장(데이터)을 올려봐. 말이 돼? 증명할 수 있어? 다른 누구가가 너의 모델과 해석을 다시 반복할 수 있어?”
과학적 태도란 “그럴 것이라는” 신념이 아니라 의심이 시작이다. 그리고 의심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한 오해와 오독의 소지가 없는 객관적인 언어로 모델을 만들고 혹은 이미 검증된 모델 위에 나의 시각과 해석을 객관적으로 증명/재연할 수 있어야 한다. 인류의 지성사 아니 인류의 전체 역사를 통틀어 이러한 과학적 태도와 지식이 객관적으로 쌓아온 것은 몇만 년의 인류 문명사에서 최근 100여 년 동안 쌓아온 것이다. 이러한 엄밀한 과학적 태도에 의해 양자역학으로 대표되는 물리학, 생물학, 천문학이 지금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현실을 만들고 있다. 그리고 AI와 함께 유전공학은 인류에게 신이라는 창조주의 역활을 곧 부여할 것이다. 앞으로 1세기 이내에 확실한 로드맵이다. 그리고 나의 생애에는 경험하지 못하겠지만 지구의 중력을 벗어난 태양계로 진출할 것이다. 나의 딸아이는 이 광경을 목도하겠지. 이러한 과학적 진화는 엄밀한 과학적 태도에 의해 한 걸음씩 쌓아왔다. 결코 점프나 지름길은 없다. (이미 십여 년 전 황우석 사태에서도 우리는 뼈저리게 느꼈다. 물론 오펜하이머의 영화에서도 나오듯 독자적이었던 과학자들의 영역이 정치와 결합하게 된 시기도 이때쯤이다. 이 영화의 정치적인 의미도 정말 할 말이 많지만.. 다음기회에) 이 책에서 이 과학적 태도를 엄밀한 문장으로 표현하고 있다. 과학자들과 논문을 작성해 본 이들은 당연한 상식이며 진리인 과학적태도에 대한 저자의 문구를 여기에 덧붙인다.
“우리는 전에도 틀렸고, 앞으로도 틀리라는 것. 진보로 나아가는 진정한 길은 확실성이 아니라 회의로, “수정 가능성이 열려 있는” 회의로 닦인다는 것. P250″
다윈의 진화론에서 시작한 우생학은 1900년대 초반부터 영국-독일-미국-북유럽까지 근대서양과 학사에 씻을 수 없는 과오는 남기고 사이비 과학으로 사라졌다. 지금은 일상적인 프레임워크로 작동하는 그 과학적 태도가 아닌 몇몇 주도권의 쥔 명망을 지닌 과학자들의 큰 목소리에 이끌려 진화론이 오염되고 독일의 나치즘, 미국은 씻을 수 없는 강제 불임과 인종차별의 근거로 이끌려 들어간다. 우생학의 핵심은 바로 서양 기독교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진리에 도달할 수 있는 절대적 사다리라는 개념과 진화론이 융합하면서 나타나는 필연적인 결과라고 나는 감히 짐작한다. 양자역학 또한 이 1900년대 초에 나오면서 서양인들이 받았던 충격과 외면은 (아인슈타인으로 대표되는 인류 지성사의 대표자인 과학자 그룹마저 극렬하게 물질의 상태를 결정할 수 없다는 이론을 거부했다) 기독교적인 관점과도 매우 맞닿아 있다.
우생학이 왜 서양인들에게 그 당시 최고의 지성인들이라고 불리는 과학자들을 매료시켰는지 몇 년 전에 읽었던 “서양문명을 읽는 코드 신-김용구” 라는 책에 잘 나와 있다.
“신이 계층적 질서를 통해 자연의 사다리를 만들어 놓고 그것에 맞춰 우리의 지식이 나아가야 할 방향도 단계적으로 설정했으니까, 그것을 따르면 신에 다가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플라톤이 선분의 비유에서 예시한 존재론적 계층구조라는 모호한 개념은 그의 영특한 제자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해 ‘자연의 사다리’라는 좀 더 이해하기 쉬운 생물학적 위계질서와 결합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이것이 기독교로 유입되어 가장 미소한 존재물로부터 모든 가능한 단계를 거쳐 ‘가장 완전한 존재’인 신에 이르는, 무한한 수의 고리로 연결된 ‘존재의 대연쇄’라는 신학적 개념으로 굳어졌지요. 18세기 후반까지 철학자와 신학자, 대부분 과학자와 교육받은 일반인들이 추호의 의심도 없이 받아들인 우주관이자 가치관이었습니다. P124”
즉 진화론은 이러한 종교와 철학의 관념이었던 사다리가 그 당시의 관점으로 실증적이고 과학적으로 다윈이 증명했다고 열광적인 환대를 받게 된다. 우생학의 발원이 다윈의 진화론을 보고 감명을 받은 프랜시스갈톤(역시 생물계통학자)이라는 사실도 역사의 아이러니이다. (다윈의 사촌이었음) 우생학의 비극은 우리나라도 겪었던 황우석 사태에서도 명확하게 나오듯 (혹시 관심 있으신 분들은 넷플릭스의 킹오브 클론 추천) 사회가 정책이 무조건적인 과학의 발견을 신봉하고 과학자들이 권력의 정치적 요구에 맹목적으로 순종했을 때의 대가를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현실은 올해 R&D 예산의 삭감에서 과학자들의 생사여탈이 결정되듯. 현대의 과학은 정치와 정책과 함께 엮여 들어간다. 무식한 대통령을 뽑으면 안되는 이유. 이 현실의 시작이 바로 오펜하이머에서 시작되어 미국의 케네디 시절 고착화가 이루어진다. )
진화론에서 다윈이 하고자 했던 말은 진화는 시간의 강물 위에서 사다리를 통한 고등생물로의 변화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스타조던과 스승, 그리고 우생학의 아버지였던 프랜시스갈톤등의 당대 명망 있는 과학자들이 목매달았던 외부의 모습과 행동으로 생물의 지위를 (심지어 인간의 지위까지) 매기는 유일한 방법은 자연상에는 절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하나의 계층구조에 매달리는 것은 더 큰 그림을, 자연의, “생명의 전체 조직”의 복잡다단한 진실을 놓치는 일이다. P227
스타 조던의 평생의 업적, 과학적 발견은 한 세기가 지나 동일한 그의 동일한 후손들인 분류과학자들에게 결국은 오류로 판명이 났다. 이것이 30대 이후 나를 사로잡은 그리고 논문을 쓰면서 환호했던 과학의 엄격한 세계이고 발전이고 진보이다. 과학적 태도에 의해 결국 한 세기가 흘렀지만 고쳐졌고 하나의 벽돌을 인류의 지성사에 쌓은 것이다. (이러한 분류학의 발전은 DNA와 분자생물학과 핵물리학의 토대 위에서 꽃피울 수 있었는데. 이것도 한 보따리 이야기.. ㅎㅎ)
그리고 마지막 과학저널리스트의 의무라고 할 수 있는 과학적 발견과 대중과의 괴리, 차이를 극복하는 일이다. 여기서 좌절하는 분류 과학자의 모습을 담담히 서술하고 있다. 특히나 교양 과학 덕후로서 다른 어느 부분보다 여기가 눈에 확 띄었다. 세상의 진리를 설파했으나 결국 분류학자로서 물고기는 없다는 진리를 설파했으나 “그러니까 그건, 음, 30년 동안 계속해 온 전투였어요.. 그래서 지금은 대신 애꿎을 골프공에 화풀이하고 있죠. …”
과학자는 실패한 “물고기는 없다.” 하지만 저자인 룰로 밀러는 결국 해낸 것이지. 전 세계의 베스트셀러가 됐으니 말이다. 이것이 바로 과학저널리스트의 역활이고 인류지성사에 빼놓을수 없는 영역이다.
인류의 지성사에서 과학에 대한 대중의 의식을 업그레이드한 대표적인 과학자, 저술가들이 있다. 아마 그 시작은 코스모스의 칼 세이건 그리고 그의 부인인 앤드루얀, 그리고 현대의 칼 세이건이라 할 수 있는 닐 타이슨 박사, 브라이언 그린..등. 난 여기에 당연히 룰로 밀러도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휭설수설하는 분기 학자들, Nature Naming이라는 책을 통해 현대 분류학의 큰 이정표를 세상에 알린 캐롤 계숙 윤 과학자와 분류학의 현대적 위대한 성과를 세상 대중에 알린 건 룰루 밀러의 큰 위대한 족적이다.
과학 저널리스트로 저자는 어릴 적 아버지의 가르침, 연애와 헤어짐, 갈등과 고독을 이겨내고 결국 평생의 반려자를 만났다. 과학 저널리스트로서의 엄밀한 과학적 태도는 세상을 보는 정말 다양한 관점 중에서 다윈의 진화론이 설파하고 있는 혼돈과 섞임, 그리고 그 속에서의 차별과 선택이 아닌 조화로움이라는 태도를 잃지 않고 있다. 정말 구원을 받았다는 느낌. 해피엔딩. 좋다.
하지만 우리의 현실은 그렇지 않다. 점점 더 극단적으로 이분법적인 세상이 점점 더 공고해지고 있다. 비관적으로 보자면 “우리 세대는 글렀다”. 그렇다면 남은 희망은 나의 다음 세대. 주위를 살펴보라고 네가 지금 있는 이 자리와 공간은 보이지 않는 혹은 옆에 있는 수많은 사람의 노고와 시간이 만들어 내는 공간과 시간이다. 항상 감사하는 마음과 극단적으로 치우치지 말라는 점을 잔소리처럼 딸아이에게 하고 있다. 하지만 사이비 과학,사이비종교, 사이비 정치라고 우리의 상식선에서 받아들일 수 없는 주장과 현혹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것. 그것을 판단하는 힘을 기르는 것은 중요하다.
루루 밀러의 언니가 했던 말은 그래서 울림이 크다.
“성장한다는 건, 자신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말을 더 이상 믿지 않는 법을 배우는 거야·P252” 이제 중3인 이과의 어쩌면 과학자의 길을 걸을지도 모르는 딸아이에게 그대로 전해주고 싶은 문구이다.
덧말) 밀러의 아버지가 했던 말 ” 여기서 인간이 존재한 기간은 요만큼이야. 게다가 우리는 아마 곧 사라지게 될 거야. 그러니까 지구 저 멀리서 떨어져서 본다면.. 우리는 정말 아무것도 아닌 거지. 거기엔 행성들이 있고, 그 너머엔 더 많은 태양계가 있어. P56″ 이미 초등학교 시절부터 아빠를 따라 코스모스를 읽고 이제는 소행성 수업을 듣는 딸아이에게는 밤하늘의 아름다움을 표현한 멋진 문구있는데.. 밀러에게는 긴 인생 시간 동안 반드시 긍정적인 의미로는 작용하지 않는 듯하다.
하지만 책의 첫 장의 첫 시작 “아빠, 이 책은 아빠를 위한 책이에요” 최고의 헌시가 아닌가. (꼭 나한테 하는 말 같애.)